준강간 '항거불능' 판단 기준, 위력·강제추행과 무엇이 다른가
고소장에 적힌 죄명 하나로 사건의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강간, 준강간, 위력에 의한 간음, 강제추행이 서로 다른 요건으로 검토되고,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죄명이 바뀌기도 합니다. 출석 요구를 받은 쪽이든 고소를 한 쪽이든, 지금 다투어지는 지점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의 사실관계, 갈라지는 네 개의 죄명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먼저 정해지는 것은 '어떤 조문으로 볼 것인가'입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고 보면 강간 또는 강제추행, 피해자가 술이나 수면 등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보면 준강간·준강제추행, 관계에서 오는 압박이 작용했다고 보면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검토됩니다.
이 구분은 단순한 이름표가 아닙니다. 요건이 다르니 입증해야 할 사실이 다르고, 다투는 방향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폭행·협박이 쟁점인 사건에서는 그 정도와 시점을 따지지만, 항거불능이 쟁점인 사건에서는 그 시각 피해자의 상태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중심이 됩니다.
실무에서 검사가 주위적으로 강간을, 예비적으로 위력에 의한 간음을 기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판부가 앞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아도 뒤의 혐의로 유죄가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부 무죄'라는 표현이 나오는 사건 대부분이 이 구조에서 나옵니다.
| 구분 | 핵심 요건 | 주로 다투는 지점 |
|---|---|---|
| 강간·강제추행 | 폭행 또는 협박 |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 |
| 준강간·준강제추행 |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 | 그 시각 피해자가 실제로 그런 상태였는지, 행위자가 이를 인식했는지 |
|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 지위·관계에서 오는 세력으로 의사를 제압 | 관계의 성격, 거절이 실질적으로 가능했는지 |
| 장애인 대상 성폭력(성폭력처벌법) |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행위 | 장애의 정도, 위계·위력의 존재, 항거불능 여부 |
항거불능은 '기억이 없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준강간에서 말하는 항거불능은 심신상실에 준할 정도로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뜻합니다. 술을 많이 마셨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걸어 다녔고 대화가 오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되지도 않습니다.
음주 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블랙아웃입니다. 기억이 끊긴 상태와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된 상태는 개념이 다릅니다. 기억은 없지만 그 시각에는 판단과 행동이 가능했던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기관은 섭취량, 시간 흐름, 이동 경로, 통화와 메시지 발신 내역, 매장 및 엘리베이터 영상 같은 객관 자료를 모아 상태를 재구성합니다.
행위자의 인식도 별도로 판단됩니다. 상대가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용했는지가 고의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항거불능이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인식하고 실행한 경우에는 미수 법리가 문제된 사례가 있습니다. '몰랐다'는 진술 하나로 정리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위력이 따로 규정된 이유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고 항거불능도 아니었지만, 거절이 사실상 어려운 관계가 있습니다. 시설의 종사자와 이용자, 고용주와 직원, 지도자와 훈련생 같은 구조입니다.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이 위력이라는 요건을 따로 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위력은 유형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위, 권세, 경제적·사회적 압박처럼 상대의 의사를 제압할 만한 일체의 세력이 포함됩니다. 다만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자동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그 관계가 해당 상황에서 실제로 작용했는지를 봅니다.
장애인 대상 사건에서는 이 지점이 특히 첨예합니다. 저항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사정을 어떻게 평가할지, 장애로 인해 거절 표현 자체가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가 다투어집니다. 최근 시설 내 성폭력 사건들에서 강간 혐의 일부가 인정되지 않은 판단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법원이 요구하는 폭행·협박의 정도와 현실의 피해 양상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조사 단계에서 결과를 실제로 바꾸는 것들
이런 사건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진술의 신빙성 판단과 주변 자료의 정합성이 사실상 승부처가 됩니다. 사건 직후의 행동, 연락 내역, 이동 경로가 진술과 어긋나는지 맞물리는지를 봅니다.
- 사건 전후 메시지와 통화 기록 원본. 캡처본만으로는 앞뒤 맥락이 잘리기 쉽습니다.
- 이동 동선을 보여주는 영상. 보존 기간이 짧아 요청 시점을 놓치면 사라집니다.
- 음주 사건이라면 결제 내역과 시간대별 섭취 정황.
- 관계의 성격을 보여주는 자료. 근로계약, 업무 지시 이력, 시설의 보호·감독 구조.
- 피해자 조사와 별도로 진행되는 진술분석, 신체 감정, 응급키트 등 전문 자료의 존재 여부.
피의자 조사에서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메우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나중에 객관 자료와 어긋나면 그 진술 하나 때문에 전체 신빙성이 흔들립니다. 반대로 고소인 입장에서는 사건 직후의 상태와 감정을 남긴 기록, 즉 병원 기록이나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가 중요한 정황이 됩니다.
절차 진행 중 잠정조치나 접근금지가 함께 논의되기도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별건으로 사건이 늘어납니다. 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구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 무죄와 일부 유죄, 그다음에 남는 문제
성폭력 사건 판결문에는 여러 개의 공소사실이 함께 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는 유죄, 일부는 무죄로 갈리면 형은 유죄 부분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무죄 부분이 있다고 해서 사건이 가볍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죄가 인정되면 형 외에 부수처분이 따라붙습니다.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고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 취업제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이 대표적입니다. 어느 조문으로 유죄가 되는지에 따라 부수처분의 범위와 기간이 달라지므로, 죄명 다툼은 형량 다툼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검사와 피고인 모두 항소할 수 있고, 무죄 부분만 따로 다투는 항소도 흔합니다. 1심 판단은 종착점이 아니라 중간 지점입니다. 1심에서 정리해 둔 사실관계와 증거가 이후 심급까지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초기 대응의 무게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고소장을 받아 든 시점이든, 경찰 조사 일정을 통보받은 시점이든, 먼저 확인할 것은 지금 사건이 어떤 요건을 두고 다투어지고 있는지입니다. 송블리에서 사건 경위와 확보한 자료를 정리해 보내 주시면, 현재 단계에서 무엇이 쟁점이고 어떤 기록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지 순서대로 짚어 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고 하면 무조건 준강간인가요?
기억이 없는 것과 항거불능 상태였던 것은 법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수사기관은 음주량, 시간 경과, 이동 경로, 통화·메시지 발신 내역, 영상 자료를 모아 그 시각의 상태를 재구성합니다. 대화와 보행이 가능했던 정황이 있으면 항거불능이 부정될 수 있고, 반대로 의식이 오락가락한 정황이 확인되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진술 하나가 아니라 자료의 정합성으로 판단됩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전혀 없었는데도 처벌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준강간·준강제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이 아니라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의 이용을 요건으로 합니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은 지위나 관계에서 오는 압박을 요건으로 합니다. 물리적 유형력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혐의가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1심에서 일부 무죄가 나오면 형도 가벼워지나요?
무죄 부분은 형의 근거에서 빠지지만, 남은 유죄 부분을 기준으로 형이 정해지므로 반드시 가벼워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검사가 무죄 부분만 항소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또한 유죄로 인정된 조문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 취업제한, 이수명령 같은 부수처분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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